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알렉산더 스크랴빈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[[러시아]]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. [[라흐마니노프]]와 모스크바 음악원 동기이자 경쟁자였다. 1888년에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하여 바실리 사포노프(1852-1918)에게서, 이론과 작곡은 [[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]]의 제자인 [[안톤 아렌스키]](1861-1906)에게서 배웠다.[* 헌데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스크랴빈의 작품을 들어보곤 "이거 순 미친 놈 아냐?"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. 속내가 복잡한 인물이었던 림스키코르사코프는 스크랴빈의 음악을 싫어했지만, 자신의 앞에서 누군가가 스크랴빈에 대해 폄하하면 반대로 스크랴빈을 칭찬했다고 한다.] 1895년에 첫 작품을 출판하였고, 1896년까지 여러 지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다. 작곡을 시작한 시기 즈음부터 철학에 큰 흥미를 보이기 시작하여 각종 철학서를 접하게 되는데 처음에는 니체 철학에 심취하여 [[극복인]](Übermensch)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는다. 머지않아 [[신비주의]][* 여기서 말하는 [[신비주의]]란 해당 문서의 [[오컬트|1번 항목]]를 가리킨다.]적인 경향이 강한 철학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(Владимир С. Соловьёв)에게 영향을 받아 음악과 철학의 융합을 꾀하게 되고, 이후 [[헬레나 블라바츠키]]의 신지학에 관한 저서를 통해 신지학에 완전히 빠지게 되며 오늘날 그의 후기 작품으로 불리는 곡들(법열의 시, 프로메테우스 등)의 작곡에 큰 영향을 끼쳤다. 한편으로 이러한 사상들이 그로 하여금 말년에 [[중2병|각종 기행]]을 일삼케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. 생전엔 키도 작고 허약한 체질이었기에 건강에 대해 염려를 자주 하고 다녔는데 애석하게도 1914년 윗입술에 생긴 농양이 원인이 되어 1년 뒤인 1915년 4월 27일 [[모스크바]]에서 [[패혈증]]으로 세상을 떠났다.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